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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모신것 평생의 영광'…DJ 워싱턴 비서관 지낸 이근팔옹

22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는 워싱턴 범동포 추모식에 김 전 대통령(DJ)의 워싱턴 체류 당시 미주 비서관 역을 맡았던 이근팔 옹(사진)이 참석해 고인을 추모했다. 이 옹은 이날 단상에 올라 기도문 낭독에 이어 DJ와 인연을 맺게 된 과정에서부터 수행시 겪었던 일화, 자신의 느낌 등을 진솔히 이야기했다. 이 옹은 우선 “김 전 대통령은 수백년에 1명 나올까 말까 하는 매우 비범한 인물”로 평가했다. 수년간 바로 곁에서 모셔왔지만 ‘잠시도 쉬지 않는 분’이라는 것이었다. 그가 본 DJ는 항상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시간이 나면 유력 정치인이나 학자 등 주요 인사들과 동포들을 만나러 다니는 정치인였다. 이 옹은 특히 “김 전 대통령은 누군가와 만나고 돌아올 때는 비행기나 차량 안에서 반드시 수첩에 기록하곤 했다”고 회고했다. 주로 만난 사람과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등에 관해 기록하는 등 낮에는 사람을 만나고 밤에는 기록하거나 책 읽는 자세를 꾸준히 견지해 왔다고 회고했다. 이 옹이 처음 DJ와 만난 것은 1972년. 당시 정치적 핍박을 피해 망명과도 같은 생활을 시작할 무렵 DJ로부터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 옹은 김 전 대통령과 각별한 연고가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많은 고민을 하다 ‘어려움에 처한 정치인을 외면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어렵게 승낙했다. 그 후 DJ는 미국을 찾을 때 마다 이 옹의 도움을 받았다. 지난 1982년 2차 망명 때는 물론 방미 활동 중에는 늘 그가 따랐다. 이근팔 옹은 기도문에서 “김 전 대통령의 서거 뉴스를 접하고 하늘이 무너지는 마음과 충격을 가눌 수 없었다”며 “생전에 한 번 더 못 뵌 것이 죄송할 따름이다”고 말했다. 이 옹은 그러나 “김대중 선생님을 가까이 모셨던 것은 나에게 무한한 영광”이라며 말을 맺었다. 천일교 기자

2009-08-24

'고인의 뜻, 이어 가겠습니다'…KCCEB서 김대중 전 대통령 추모식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추모식이 샌프란시스코지역 한인회(회장 김상언) 주관으로 22일 이스트베이 한인봉사회(관장 이정렬·KCCEB) 회관에서 열려 고인의 서거를 애도하고 생전의 업적과 남기고 간 뜻을 기렸다. 김이수 민주평통 SF협의회장과 김근태 전 SF 한인회장, 박순근 전 이사장 등 30여명의 지역 한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이날 추모식은 이석찬 전 SF 한인회장의 추도문 낭독과 KCCEB 이정렬 관장의 기도로 시작돼 엄숙한 분위기로 치러졌다. SF 총영사관 신맹호 부총영사는 추모사를 통해 “남북화합과 통일을 위해 애쓰던 민족의 큰 어른을 잃은 것을 애석하게 생각한다”며 “우리에게 남기신 화해와 용서, 사랑의 깊은 의미를 다시금 기억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SF지역 한인회 김상언 회장은 “인류 역사상 가장 보편적인 사상가이자 정치가였던 고인이 남기고 간 교훈인 자유와 평화, 통일을 위해 함께 전진해나가자”고 당부했다. 김회장은 또한 호남향우회 미주총연합회 김진덕 전 회장의 추모사를 대독, “김 전대통령의 서거소식은 조국을 지탱하던 기둥이 무너져 내린 느낌”이라며 “남북통일을 끝내 이루지 못하고 떠나보내게 된 것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한민족 경제비전연구소 배태일 박사는 김 전대통령과의 개인적인 친분과 고인의 인간적인 성품을 소개하고 “민족사에 길이길이 남을 업적을 세우신 분을 잃었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어 무용가 이도희씨가 한민족여성네트워크 북가주지회(KOWIN) 이정순 회장의 추모시에 맞춰 진혼제를 올리며 고인의 넋을 달랬다. 추모식 말미에는 참석자 전원이 손을 맞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며 김 전대통령의 평생 숙원이었던 통일의 염원을 되새기고, 그 뜻을 이어가기로 다짐했다. 한아람 인턴기자

2009-08-24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망명때 한국에 사면 강력 요청 했었다'

"인권과 정치적 자유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분이셨죠." 지난 21일 LA한인회관에 마련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찾은 머빈 다이멀리(82) 전 연방하원의원은 김 전 대통령을 이렇게 회고했다. 다이멀리 전 의원은 연방하원의원 재직 시절(1981년~1992년) 김 전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특히 80년대 초 연방하원 외교분과위원회 위원장으로 활약하면서 당시 미국 망명중이던 김 전 대통령의 사면 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다이멀리 전 의원은 "당시 국무부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김 전 대통령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며 "외교분과 위원회와 인권위원회가 함께 한국 정부에 김 전 대통령의 사면을 강력하게 요청했었다"고 말했다. 다이멀리 전 의원이 먼저 만난 것은 이희호 여사였다. 국무부와 주한미국대사관의 주선으로 김 전 대통령의 자택을 방문했던 것이 계기였다. "자택에 도착하자 감시하던 요원들의 주시를 받았어요. 그리고 이 여사로 부터 김 전 대통령의 사면운동을 부탁받았었죠." 이 일로 당시 하버드 대학에 머물던 김 전 대통령이 다이멀리 전 의원에게 감사를 전하기 찾아온 것이 둘의 첫 만남이었다. 이후 두 사람은 지속적으로 만나며 친분을 쌓았다. 그리고 2001년엔 청와대 초청도 받았다. 다이멀리 전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은 겸손하며 말수가 적었지만 인권과 정치적 자유에 대한 신념이 강했고 한국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던 분"이라고 회상했다. "김 전 대통령의 퇴임 후 연락이 끊겼다가 서거 소식을 접하니 너무 마음이 아프다"는 다이멀리 전 의원은 "유가족에 애도를 표하며 특히 이희호 여사는 강한 분이기 때문에 슬픔을 잘 이겨내시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다이멀리 전 의원은 남미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 출생한 유학생 출신으로 지난 62년 가주 하원의원에 당선되며 본격적인 정치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가주 상원의원을 거쳐 유색인종 최초로 가주 부지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이런 이력으로 인해 흑인사회의 정치 대부로 불리고 있다. 서기원 기자 [email protected]

2009-08-21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미국 조문단 지한파 총출동

백악관이 21일 발표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 참석할 조문단은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10명으로 명망과 중량감을 갖춘 지한파들로 구성됐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은 미국의 초대 여성 외교수장으로 김대중 정부와 빌 클린턴 행정부가 대북관계에서 일치된 코드를 보였던 2000년 10월 북한을 방문했고 방북 후 김 전 대통령을 예방한 인연이 있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의 평양 방문은 DJ의 강력한 권고에 따른 것이라는 얘기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해럴드 고(한국명 고홍주) 국무부 법률고문은 DJ 재임기간과 겹치는 1998년부터 2001년까지 국무부 인권담당 차관보를 지냈다. 고 고문이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다시 관직에 기용되기 전까지 활동했던 예일대 로스쿨 학장실에는 DJ 올브라이트 전 장관이 나란히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1997~2000년 토머스 허바드 코리아소사이어티 이사장은 2001~2004년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DJ와 인연을 맺었다. 특히 보즈워스 대표는 북한의 2차 핵실험으로 인해 한반도의 위기가 고조되던 지난 5월 방한해 DJ를 예방하는 등 친분이 두텁다. 도널드 그레그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 미대사는 오래 전부터 DJ와 인연이 있던 인물들이다. 그레그 전 대사는 1980년대 김 전 대통령의 미국 망명기간에 DJ와 처음 알게 됐지만 1980년 김 전 대통령이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당시 전두환 대통령에게 DJ 처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레이니 전 대사는 지난 94년 1차 북핵 위기 때 DJ가 제안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을 실질적으로 성사시키는데 기여한 인물로 꼽힌다. 웬디 셔먼 전 대북정책조정관은 DJ의 햇볕정책을 지지했고 그 인연으로 2007년 DJ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올브라이트 전 장관과 함께 DJ를 별도 면담할 수 있었다. 짐 리치 전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동아태소위 위원장은 공화당 출신이면서도 의정활동 당시 대북제재의 위험성을 강조하는 등 햇볕정책을 강조했다. 에번스 리비어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도 DJ 재임기간인 1998~2000년 사이에 미 국무부의 대북협상팀 부팀장을 맡았다.

2009-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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